<월간지 06년 9월호 통일교 대해부>
● 메시아 문선명총재 사후 지상에 머물 궁전 완공 통일교는 종교이자 기업이다. 그것도 평범한 기업이 아니라 국내외에 수십 개의 대규모 프로젝트를 국제적인 대기업이다. 종교색을 벗은 문화, 언론, 교육, 스포츠분야에서의 다양한 활동으로 이단 시비를 잠재우면서 날로 사회적 영향력을 키우고있다. 통일교의 공식명칭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다. 원래 이름인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는 재단만 유지하고 있다. 오늘날 통일교는 일반인에게 참가정실천운동연합, 한국청소년순결운동본부 등의 사회단체로 다가가고 있다. 통일교의 상징이라 할만한 합동결혼식(교차결혼식)은 독특한 문화풍속으로 인식되고 있다. 지난 6월중순 경기도 가평의 장락산에 위치한 통일교 '청평성지' 에 미국의 백악관을 닮은 대형건물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박물관 용도로 건축허가를 받은 이 건물은 통일굥ㅔ서 본전성지本殿聖地 본宮 또는 본堂으로 불린다. 공식명칭은 天正宮 박물관. 교주인 문선명(86)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총재가 살아서는 물론이고 죽어서도 머물 집이다. 6월13일, 3만여명의 통일교신도가 모인 가운데 문총재가 황재로 즉위하는 대관식戴冠式과 입궁식入宮式이 있었다. 천정궁이 들어섬으로써 지난 30여년간 진행돼온 통일교의 '청평대역사'는 일단락된 셈이다. 통일교타운으로도 불리는 이곳에 초대형 수련원을 비롯해 최근 언론의 조명을 받은 국제중고등학교, 신학대학원, 병원, 실버타운등이 들어서있다. 통일교가 가평군 일대에 사둔 땅은 이곳을 포함해 800만평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7월중순엔 전남 여수에서 통일그룹 소속(주)일상이 국제관광레저단지 개발에 착수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헌금이 수입원인 종교단체의 기업활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청평통일교왕국'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 제 1부 청평 왕국 - "메시아이신 참부모님은 영계와 육계를 모두 왕래하실 수 있는 영원한 분이세요. 다음에 참부모님께서 육신을 벗고 영계에 가신다 하더라도 참부모님께서는 지상에 와계세요. 그렇다면 지상에도 메시아이신 참부모님의 본궁이 있어야합니다." (2005년9월4일大母님 말씀) 서울에서 춘천으로 가다 신청평대교를 건너 북한강을 옆에 끼고 30분가량 달리면 통일교 성지가 있는 장락산이 눈에 들어온다. 북한강 상류가 휘감아 돌고있는 이곳은 자연보전권 구역으로 개발이 제한되고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송산리다. 본궁 건축헌금 완납자, 기념사진 혜택 청평성지에는 천정궁 박물관을 비롯해 천주청평수련원, 청심국제중고등학교, 청심신학대학원, 청심유치원-어린이집, 청심병원, 한방병원, 청아캠프(청소년수련원), 청심빌리지(실버타운), 청아빌라(직원숙사)가 들어서 있다. 7월하순, 장락산으로 향하는 도로 곳곳에는 통일교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나부꼈다. 청심국제중고등학교의 영어캠프, 청아캠프의 청심뮤직페스티벌, 청심국제병원의 통일의학국제학술대회... 천정궁은 일반인의 접근을 허용치않고있다. 통일교 신자라도 특별한 행사가 없는한 어느정도 위치에 들지 않으면 들어갈수 없다. 대지 1만2000평, 연건평9200평인 천정궁은 본관(지상4층, 지하2층)과 2개의 별관(지상2층,지하2층)으로 구성돼있다. 청평성진 시설중 종교적 색채가 가장 뚜렷한 곳은 천주청평수련원이다. 매 주말 열리는 1박2일의 집회를 비롯해 21일, 40일 수련회등이 수시로 이곳에는 천성왕림궁전, 정심원, 친화관, 청수탕(목욕탕), 청심탑 등의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그중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은 지하2층, 지상3층의 천성왕림궁전, 대지 8600평, 연건평 5700옆ㅕㅇ에 이른다. '복귀한 에덴동산'으로 불리는 이곳엔 한번에 8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성전과 1600명이 한자리에서 식사할수 있는 대형식당이 있다. 수련원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기다란 원통형의 청심탑(33m) 외부는 문총재의 일대기를 9단계로 조명한 부조浮彫로 치장돼있다. 첫장면은 탄생모습이고, 마지막 장면은 인류의 왕으로 즉위하는 모습이다. 탑 내부에는 '천성왕림궁전 건축헌금자' 명단이 벽면을 빙 돌아가며 새겨져있다. 상당수는 한국인 이름이지만 영어권과 일본인 이름도 꽤 눈에 띈다. 헌금자는 합동결혼식 가정과 기성 가정(결혼한후 입교해 다시 결혼해 결혼축복을 받은 가정), 독신축복 가정으로 구분돼 있는데, 기업체 및 단체 이름도 표기돼 있다. 한가운데에는 '아버지의 기도'가 적혀있다. '참부모라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알아야겠사옵니다. .. 그 참부모의 사상을 몸에 지녀야 되겠사옵니다.' 참부모는 문선명총재를 말한다. 부인 한학자(63)씨와 구분할 때는 참아버님으로 부른다. 7월 하순 주말 오후ㅡ 천성왕림궁전1층 사무실 벽엔 '본전성지 헌금 기한 재연장'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전단지를 보니 본전성지 헌금 접수 기한을 9월30일까지 연장한다는 내용이다. 액수는 한국신도의 경우 개인당 또는 부부당 160만원. '기타 나라는 헌금 기준이 다르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본전성지 헌금을 완납한 '식구'(통일교에서는 교인을 식구라 부른다)에게는 본전성지에 이름을 새겨주고 기념사진 촬영이라는 혜택이 주어진다. 한편 지하 강당에서는 신도들이 줄을 서서 번호표를 받고 있었다. 자기 차례가 되면 조상헤원 헌금봉투를 접수했다. 메 주말 청평수련원에서 열리는 조상해원식은 말 그대로 조상의 원통함을 풀어주는 행사다. 120-126대 조상해원식 조상해원 헌금은 금액이 정해져 있다. 최초 1-7대까지는 직계, 모계 각 70만원이다. 8대 이후는 7대 마다 5만원 이상, 그와 별개로 7대마다 5만원이상, 그와 별개로 7대마다 점수비 2만5000원을 내야 한다. 1991년 11월 문 총재는 "만약 조상해원식을 하지 않고 영계에 가면 조상들에게 참소를 당한다"며 조상해원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99년 문 총재가 "새로운 成約시대에 입적하려면 반드시 1대부터 7대까지의 조상으로부터 120대까지 해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후다. 1999년 2-8월까지 첫 직계 7대 조상해원식이 치러졌다. 청평 집회에 참석하는 신도는 대부분 조상해원식에 참가한다. 조상해원식을 치른 다음에는 조상축복식을 해야한다. 해원헌금을 완납한지 100일이 지난 성도에게만 자역이 주어진다. 접수비는 7대마다 5만원, 통일교측에 따르면 해원을 했어도 축복을 받지 않은 조상의 영은 구원받지 못한다. 애초 120대 조상까지만 해당됐던 해원 대상은 계속 늘고있다. 올해의 경우 지난 6월부터 9월까지 120-126대 조상에 대한 해원식이 진행되고 있다. 축복식 대상은 113-119대. 계보 범위도 넓어졌다.처음엔 직계와 모계 조상만 해당됐으나, 지금은 부의 모계(친할머니 지계), 모의 모계(외할머니 직계) 조상에 대해서도 해원식을 갖고있다. 해원 대상은 앞으로 210대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참부모님께서 조상해원식을 210대까지 하라고 하셨습니다. 식구님들께서 210대까지 다 하시면 210대 이후는 영계의 참자녀님을 중심한 절대신령들이 아담해와(하와)까지하나님 혈통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준비해놓고 있습니다." (대모님, 2006년 2월 제 761차 특별수련회) 210대면 얼마나 오래된 조상일까. 1대를30년으로 잡으면 210대는 6300년 전의 조상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1983년 12월 22일 미국 뉴욕의 어빙턴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이던 흥진씨는 자동차 충돌사고를 당했다. 사고 당시 문 총재는 한구그이 8대 도시를 돌면서 승공강연을 하고 있었다. 흥진씨는 이듬해 1월 2일 사망했다. 문 총재는 사탄이 자신의 아들을 제물로 빼앗아갔다며 그의 사망일을 愛勝일로 선포했다. 흥진님은 영계에서 예수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다. 사망 다음날 문 총재에 의해 영계총사령관으로 임명된 그는청평수련원 집회를 통해 분립(육신에 붙어있던 영인체가 떨어져나가는 것)된 영인들이 죄악을 벗을 수 있도록 교육하는 일을 맡고있다. 대모님은 영 분립을, 흥진님은 영 교육을 맡고있는 것이다. 대모님 역사로 분립된 영은 모두 흥진님이 운영하는 영계수련소로 보내진다. 거기서100일간 교육을 받고 절대선령으로 거듭난 후 축복가정의 수련을 돕는다는 것이다. 청평 역사는 한마디로 악령 분립의 역사다. 통일교 교재 '성약시대 청평역사와 축복가정의 길' 에 따르면, 해원된 영은 식구들의 선한 조상이 돼 참부모가 천국문을 열 때 흥진민과 함께 그 일을 돕는다. 이처럼조상해원식은청평 집회의 핵심이다. 오후 6시. 집회에 참석하려는 신도들이 식당으로 몰려들었다. 사람이 많아 20분가량 줄을 선 다음에야 식판을 집을 수 있었다. 어림잡아 1000명이 넘어 보였다. 외국인으로는 일본인이 많았는데, 백인과 흑인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靈 털기와 단심가 첫날 집회는 오후 6시40분에 시작됐다. 장소는 언덕배기에 있는친화관. 사람이 너무 많아 일부 신도들은 신발장이 있는 마르에 걸터 앉거나 밖에 서서 들어야 했다. 먼저 단상에 걸린 참부모 (문선명-한학자 부부) 사진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이어 8개항의 가정맹세문을 제창했다. '天一國 주인 우리 가정은 참사랑을 중심으로 본향 땅을 찾아 본연의 창조이상인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을 창건할것을 맹세하나이다'.(가정맹세문 제1조) 천일국은 통일교에서 말하는 태평성대의 지상천국을 일컫는다. 통일교측에 따르면 이미 천일국은 지상에 세워졌다. 제1강좌는 7시에 시작돼 한 시간동안 진행된다. 강사는 통일교간부로, 주제는 '4대 심정권과 3대 왕권'이었다. 문 총재의 과거 강연 내용을 해설하는 식이었다. 4대 심정권은 부모, 자식. 부부, 형제를 말하는 것이고, 3대 왕권은 할아버지(과거), 부모(현재), 나(미래)를 뜻한다. 외국인 신도들은 동시통역으로 듣기위해 라디오 수신기에 연결된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었다. 주제가 딱딱해서인지 청중의 집중도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조는 사람도 있고 아이 울음소리가 나는 등 다소 산만했다. 하지만 8시부터 성가 찬송이 시작되자 분위기는 확 바뀌었다. '성원의 은사'라는 노래를 한 시간 동안 계속 불러댔는데 엄청난 열기가 뿜어졌다. 찬양대 소속의 남녀 청년이 세 명씩 교대로 단상에 올라와 박진감 넘치는 율동으로 찬송을 이끌었다. 반주는 북과 전자오르간, 그냥 노래만 하는 게 아니었다. 신도들은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르다 율동팀의 지휘에 따라 양손으로 상대방 어깨를 두드리거나 자신의 머리와 어깨,목, 가슴, 팔다리, 배를 두들겨댔다. 이른바 영털기로, 몸에 붙은 악령을 털어낸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한 시간 동안 그러고 나니 손바닥이 얼얼했다. 마지막엔 참부모님이 즐겨 부른다는 '단심가'를 불렀다. '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임 향한 일편 단심 가실 줄이 있으랴.'분위기가 처연해졌다. 이어 하나님과 참부모님, 그리고 천일국의 안녕을 기원하는 억만세삼창을 했다.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참부모 문 총재에개 경배(큰절)하는 것으로 1부 순서가 끝났다. 신도들은 성전을 드나들 때 참부모 사진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청평성지를 소개하는 영상물 시청이 있은 뒤 제2 강좌가 시작 됐다. 주제는 '천일국 시대의 '청심국제병원'.병원 이사장이 나와서 병원의 각 시설과 주요 영성치료 사례를 소개했다. 흥미로운 것은 대모님이 의사들을 대동하고 회진과 진찰에 관여한다는 점, 환자의 몸속에 깃들인 악령을 끄집어 내 흥진님의 영계수련소로 보낸다는 것이다. 어쨌든 의학과 종교가 절묘하게 결합된 이 병원에서 일반 병원에서 포기한 환자를 낫게 한다는 소문도 있긴 하다. 강당 벽면에 붙어 있는 '제106회 40일 특별수련회(2006.7.1~8.9)참석자 라커배정' 도표가 눈에 띄었다. 한국인 참석자 261명(남 67명, 여 194명), 일본인 참석자 315명(남67명, 여248명)이었다. 그 밖의 나라를 가리키는 '국제'참석자는 111명(남 37명, 여74명)이었다. "로마시대 황제가 있었듯" 강연이 끝난 후 신도들은 정심원으로 옮겨 기도회를 가졌다. 단상 뒷면 중앙에는 문 총재 부부의 사진이, 그 왼쪽 아래로는 대모님과 흥진님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기도회의 처음과 마지막은 열시 참부모에 대한 경배로 끝났다. 밤 11시 30분, 첫날 집회가 끝났다. 남자 신도의 잠자리는 지하 2층의 대강당마루바닥. 신도들은 강당 한쪽에 있는 창고에서 한두 장의 담요를 꺼내와 깔고 덮었다. 여자 신도 잠자리는 친화관 강당이었다. 하지만 이런 구분에 매이지 않고 지하 강당에서 부부 혹은 가족 단위로 자는 신도도 많았다. 둘째날 집회는 새벽 5시에 시작됐다. 기상 시간은 4시 반, 이불을 개서 창고에 넣은 다음 세면장으로 갔다. 강에서 올라온 안개가 수련원을 뒤덮고 있었다. 정심원 앞마당에 있는 사랑나무(버드나무)에 한 청년이 경배하는 모습이 어릿거렸다. 훈독회(경전 강독)가 진행되는 동안 여기저기서 콜록거리는 소리가 났다. 연사는 유엔의 무능을 지적하면서 새로운 국제연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말끝마다 '참부모님'을 언급하며 "우리의 혈통을 바꾼 참부모님 축복으로 결혼하는 게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했다. 그는 "로마시대에 황제가 있었듯이 참부모님도 황제"라며 문 총재를 '천일국의 성덕황제'라고 했다. 첫날 연사들과 마찬가지로 예수 얘기는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 창 밖으로 동이 터오고 있었다. 오전6~8시는 성지 기도 및 아침시가시간. 성지는 수련원 뒤편 산 언덕배기에 위치한 작은 터를 말한다. 천정궁을 본전성지라 부르는 것은 바로 이 수련원 성지와 구분하기위해서다. 20분 가량 산을 오르니 성지에 닿는다 전망이 탁 트인 성지엔 축복스로 불리는 아름드리 잣나무가 서 있다. 땅바닥엔 엉덩이를 겨우 걸칠 정도로 작은 화강암이 촘촘히 박혀 있다. 신도들은 대체로 돌에 앉아 축복수를 향해 기도하거나 단상에 잠겼다. 한 외국인 여자는 땅바각에 엎드려 눈물을 쏟으며 쉬지 않고 응얼거렸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외국인도 있었다. 간간이 빗방울이 날렸다. 아침식사는 빵과 우유. 집회는 찬송으로 재개됐다. 첫날과 마찬가지로 한 시간동안 같은 노래를 반복했다. 9시30분,드디어 조상해원식이 시작됐다. '경축 직계, 모계120~126대 조상해원식'이라는 현수막이 단상 정면에 내걸렸다. 해원식이라고 특별한 의식은 없었다. 짙은 하늘색 양장 차림의 대모님이 나타났다는것말고는 . 대모님 말씀의 줴는 '천국 가는 길' 이었다. 그에 따르면 아담과 해와의 타락 이후 모든 인간은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없게됐다. 그래서 하나님이 노아와 모세, 예수를 보냈는데, 하나같이 실패했으며 마지막으로 오신 참부모만이 메시아의 사명을 다했다는 것이다. 11시부터 조생해원 찬송이 시작됐다. 영 털기의 열기로 실내가 후끈 달아올랐다. 옆에 앉은 일본인 임산부는 불룩한 배를 두 손으로 열심히 문질러댔다. 수련원 간부로 보이는 세 사람이 무작위로 줄을 돌면서 신도들 머리를 두들겨댔다. 이렇게 한 시간이 흘렀다. 통성기도에 이어 억만세삼창을 하는 것으로 모든 집회 일정이 끝났다. "모두 통일교 산이야" 올해 청평성지에서 벌어진 주요 생사를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평의 통일교 소유 땅은 설악면 송도리에 그치지 않는다. 청평수련원에서 강 건너편에 보이는 청평면 고성리 일대에도 상당한 임야를 갖고있다. 제2부 메시아인가, 사이비교주인가 "기독교인들은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고하지요 ? 미친 사람들이에요. 죽어보라는겁니다. 다 거꾸로 매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천주 청평수련홈페이지 '참부모님 말씀' 1995년11월3일) 문총재는 1920년 평북 정주의 기독교농가에서 8남매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통일교재단에서 발행하는 '세계일보' 기사 (1995년8월26일)에 따르면, 문총재는 열다섯살이던 1935년 4월 17일 부활절 새벽 정주의 묘두산에서 기도하던중 예수의 계시를 받았다. 예수의 미완성사업인 지상천국 건설을 책임지라는 권면이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메시아는 물론 예수다. 통일교서도 그 점은 인정한다. 다만 실패한 메시아로 간주한다. 예수의 실패를 만회하려 하나님이 다시 보낸 메시아, 곧 재림주가 바로 문선명총재다. 그렇다면 예수의 실패란 무엇인가.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통일교의 경전인 원리강론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이해가 따라야한다. 원리강론은 일종의 성경해설서인데, 성서를 기독교와는 상당히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통일교가 '유사기독교' 소리를 듣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일요일인 8월5일, 서울 청파동에 있는 통일교 본부교회를 찾았다.예배인원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100명 남짓할까. 성겨옹독이라는게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떤 교인도 성경을 갖고있지 않다. 설교주제는 '민족복귀의 선행조건' 목사는 8.15광복의 원인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외적인 요인은 연합군의 승리와 원자폭탄, 내적인 요인으로는 참부모를 맞기 위한 준비가 끝난 점이라고 했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시작된 우리 민족의 사탄분립 기간 (40년)이 1945년에 끝났기 때문에 광복이 찾아올 수 밖에 없었다는 것. 이는 원리강론 '재림론' 에 나오는 내용으로, 제1이스라엘 선민(구약시대)이 애급(이집트)에서 400년을 고통당하고, 제2이스라엘 선민(신약시대)이 로마제국의 통치를 400년간 받았기에 제3이스라엘 선민인 한국도 40수에 해당하는 사탄분립 기대 基臺를 충족하기 위해 40년간 일본 제국의 통치를 받아야만했다는 논리다. 목사는 참부모에 대해 신도가 취해야할 두가지 자세를 강조했다. 참부모로 모실 때는 자식의 도리를, 천일국앙으로모실 때는 신하의 도리를 다해야한다는 것. 다른 교회에 비해 청평수련회 참석률이 낮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이어 교구장(시-도관할목사)이 교회소식을 알리는 시간에 참보모의 근황을 알렸다.참아버님은 여수개발 현장에,참어머님은 남미와 오세아니아 대륙을 순회하고 있다고했다. 원리강론에 따르면 인류역사는 하나님이 원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을 구원해 창조 본연의 이상세계를 완성해가는 과정이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통일교는 인간타락의 기원을 사탄인 천사장 누시엘(뱀)과 하와의 불륜에서 찾는다 (영적타락). 불륜한 하와가 아담과 관계를 가짐으로써 인간의 피엔 원죄가 흐르게됐다(육적타락).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은 영적인 구원이다. 하지만 툥일교의 구원은 영육을 아우른 구원이다. 인간의 몸이 영과 육으로 이뤄져있기 때문이란다. 그 근거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 흙으로 육신을 창조하고 거기에 생기를 불어넣어생령이 되게하셨다.' 는 성경의 창세기 구절이다. 인간이 죄를 구속해 하나님에게 복귀시키는사명을 띠고 태어난 사람이 바로 예수다. 하지만 예수는 '뜻하지 않게' 십자가에 못박힘으로써 영적 구원만 달성하고 육적 구원에는 실패했다. 예수의 육신이 사탄에게 침범당해 살해됨에 따라 예수를 믿는 신도의 몸도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됐다. 그러므로 인간의 육적 구원까지 이뤄 하나님의 창조 목적인 天上천국과 지상천국을 실현할 참된 메시아가 다시 와야 한다. 그가 바로 문 총재라는 것이다. 그러면 육적 구원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육적 구원을 받으려면 육적 타락에서 비롯된 원죄를 없애야만 한다. 원죄를 없애려면 타락하기 전 아담의 혈통으로 복귀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은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안되고 메시아의 重生으로만 가능하다. 즉 메시아의 축복을 받아 거듭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재림 주는 참부모다. 통일교의 합동 결혼식은 바로 축복 중생의 원리를 실현하는 수단이다. 참부인 문 총재의 축복을 받아 원죄가 없는 삶으로 거듭나는 뜻이다. 통일굥ㅔ서 기성 부부도 합동결혼식을 치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또 합동결혼식에서 성주를 마시는 것은 피를 새롭게해 하나님의 혈통으로 복귀하는 복귀하는 것을 뜻한다. 합동결혼식을 치른 후에는 다른 쌍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서로에게 탕감봉 蕩減棒을 맞아야한다. 탕감봉 의식은 죄를 없앤다는 뜻으로 신랑이 먼저 치른다. 첫날-둘째날 여성상위, 셋째날 남성상위 통일교 신도는 결혼식을 치른 후 곧바로 함께 살지 못한다. 일정 기간 각자의 책임분담(3명 이상 전도, 헌금, 교회봉사활동등)을 다한 후에야 비로서 합방할 수 있다. 이것을 통일교 용어로는 가정출발이라고 하ㄴ다. 예전엔 3년으로 정해져있었는데, 요즘엔 따로 기간을 정하지 않고 교구장이 부부의 사정을 감안해 몇 주 만에도 가정출발을 허용한다. 가정출발을 하기 전 반드시 치러야 하는 의식이 이르ㄴ바 '3일행사' 다. 3일행사에는 통일교의 핵심교리인 복귀섭리의 뜻이 구현돼있다. 전 통일교 목사 박준철(2001년 통일교 탈퇴기자회견,2004년 사망)씨의 저서 '빼앗긴 30년, 잃어버린 30년'에는 3일행사와 관련된 통일교 공문 내용이 소개돼있다. 공문에서는 성교시 준비물, 성교횟수, 성교방법등이 명시돼 있다. 준비물은 참부모님 존영, 심정초 또는 통일초, 성건(포도주를 묻힌 수건), 성건을 담는 그릇, 성염(소금)등이다. 부부는 3일간 하루 한번씩 모두 세차례 성굫ㅐ야 한다. 체위는, 첫날과 둘째날은 여성상위, 마지막날은 남성상위다. 첫날은 타락한 아담의 복귀를, 둘째날은 예수님 처지에서의 탐감복귀를, 셋째날은 복귀된 신랑으로서 신부를 재창조함을 뜻한다. 첫날과 둘째날 여성상위를 취하는 것은 해와, 즉 아내가 먼전 복귀해 남편을 다시 태어나게 함을 상징한다. 셋째날의 남성상위는 남편의 주관성 회복을 뜻한다. 공문에는 '본 식대로 3일행사를 하지 못했을 경우 협회 가정국에 상담한 후 성별의 탕감조건을 세워야한다. 그 다음 축도를 받고 성건을 다시 지급받아 3일행사를 실시한다.'는 규정이 있다. 초기 합동결혼식의 경우 문 총재가 직접 짝을 맺어줬다. 하지만 건수가 늘면서 사진만으로 연결됐다. 사진 짝짓기도 처음엔 문총재가 했으나 요즘엔 교구장이 대행한다. 통일교측에 따르면 1960년 이후 합동결혼식을 통해 결혼한 부부는 모두 5억여쌍에 이른다. 이는 실제 결혼한 부부의 수가 아니라 목표치다. 신도수가 30만-40만이라는 점만 봐도 허구의 숫자임을 알수있다. 또 합동결혼식은 공짜로 하는게 아니다. 탈교자의 증언에 의하면 1인당 200만-300만원을 축복헌금 및 결혼비용으로 내야한다. 합동결혼식은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화제가 됐는데, 최근 몇년간 소송이 이어지면서 요즘은 주춤한 상태다. '아사히신문' 한국지사의 협조로 확인한 대표적인 법원 판결 사례는 다음과 같다. "작은 비치볼 탑, 5만달러에 팔려" 합동결혼식에 따른 혼인이 무효라는 최초의 판결은 1996년에 나왔다. 1996년5월8일도쿄최고재판소(한국의대법원)는 34세의 전통일교여신도가 낸 혼인무효확인 청구소송에서 합동결혼식에 의한 혼인은 무효라는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이 판결 이후 혼인무효소송이 줄을 이었다. 2002년엔 배상판결까지나왔다. 8월21일 도쿄지방법원은 불법 유혹과 자신들의 의징에 반하는 강제결혼등을 이유로 제소한 전 통일교신도3명(여자2명,남자1명)에게 통일교측에서 92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히로쯔구판사는 "신도들이 통일교가 정해준 상대방에 대해 거절할 자유가 없으며 합동결혼식에 불참할 경우 신도 자신은 물론 선조들도 구원을 받지 못할 것으로 믿게 만들었다"며 "통일교는 신도들에게 불안과 두려움을 주입시켜 탈교하지 못하게만들었다."고 판시했다. 2004년 2월26일 최고재판소가 원심을 인정함으로써 통일교의 패소가 확정됐다. 합동결혼식과 더불어 일본에서 큰 물의를 일으킨 것이 영감商法이다. 영감상법이란 항아리나 도자기등에 하나님의 영, 또는 선조의 원혼이 들어있다면 수천만원대의 고가에 판매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판매물품은 항아리, 도자기, 구슬, 염주, 도장 따위다. 영감상법은 문 총재의 전 며느리 홍난숙(40세 1997년 이혼)씨가 1999년 펴낸 In the shadow of Moon (문선명일가의 그늘에서)라는 책에도 소개돼있다. 홍씨가 1992년 한학자씨의 일본 10개도시 순회방문길에 동행했을 때의 목격담이다. "그들은 수천명이나 되는 사람에게 이것을 사면 죽은 가족도 반드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며 종교적인 항아리와 구슬, 회화를 팔아 수백만달러를 거둬들였다. 작은 비치볼 탑이 놀랍게도 5만달러에 팔렸다." 1987년 일본 변호사 300명은 "전국영감상법대책연락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영감상법 피해자 지원에 나섰다. 월간 현대종교2005년 12월호에 따르면 신자 가족은 2003년 '전국통일협회피해자가족모임'이라는 단체를 설립했다. 1987년부터 2004년까지 18년간 2만5213건의 피해상담이 있었다고 한다. 역시 '아사히신문' 기사를 통해 살펴본 주요판결사례다. 1999년 12월 16일 후쿠오카지방법원은 영감상법으로 피해를 보았다는 주부두사람에게 820만엔을 지급하라는 오사카고등법원의 판결에 불복한 통일교측의 상고를 기각했다. 오사카에 사는 이들은 질병과 불행이 조상과의 인연 때문이라는 통일교측 권유로 모두 합쳐 890만엔을 헌금했다. 최고재판소는 "(헌금)권유의 위법성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통일교는 기독교와는 달리 10%십일조가 아닌 30%십의삼조를 낸다. 문총재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통일교 내부 문서에 따르면, 문총재는 2000년4월20일미국에서 40회성혼기념식을 갖는 자리에서 "모든축복가정은 10분의3을 헌금해야한다."고 말했다. 헌금의 과다 여부를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은 특별헌금의 종류다. 통일교에는 갖가지 명목의 특별헌금이 있는데, 액수가 매우 크다. 1999년 12월1일,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각급교역자에게 "새시대새천년만지 특별정성"이라는 제목의 공금을 보내 헌금을 강조했다. 공문에 명시된 헌금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총生祝헌금 : 가정당 1만6천달러 ▲ 천주 승리축하헌금 : 1개월분 수입 ▲ 가정당1만달러 ▲구국헌금 1인당160만원 ▲정주평화공원조성기금 1인당8만원 ▲ 건국기금 :가정당 매월17만원 정주평화공원은 평안북도 정주에 있는 문선명총재의 생가 주변에 조성하는 공원을 말한다. 공문은 또 문총재의 80세탄신을 기리는 예물정성을 강조하고 있다. '세계각국별로 상징적으로 축복을 다시 받는 기준에서 축복기금(한국은 가정당 140만원)을 세계지도자회의에서 결정됨.' 납부기간은 1999년 12월 31일 이다. 그밖에 액수가 큰 특별헌금으로는 입적入籍헌금(천달러), 브라질40일교육헌금(1만6천달러), 성전건축기공식헌금(320만원)등이 있다. 헌금을 강조한 또 다른 공문에는 '사정이 어려우면 분납도 가능'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실제로 한국인 신도중에는 지로납부방식으로 특별헌금을 분납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 펴낸 '하나님왕권즉위식'은 2001년1월13일 청평수련원에서 거행된'하나님 왕권즉위식'을 전후한 문총재의 말과 기도를 정리한 책이다. 헌금과 관련된 주요 대목이다. '블랙흥진'의 몽둥이질 통일교에 대한 비난의 한켠에는 문총재 가족의 우상화시비가 있다. 먼저 부인 한학자씨. 한씨는 17세이던 1960년 40세의 문총재와 결혼해 14명의 자식을 낳았다. 통일교에서는 문총재의 자식들 이름 뒤에 모두 '님'자를 붙여부른다. 현재 세계평화여성연합 총재를 맡고 있는 한씨는 통일교에서 참어머니로 불리며 신도로부터 참아버지에 준하는 경배를 받는다. 원리강론 '중생론'에 따르면 참어머니=聖神=後해와다. 한씨의 어머니인 홍순애씨는 사후 대모님으로 '지상에 재림해 청평수련원의 영적 역사를 이끌고 있다. 문총재의 어머니 김경계씨는 忠母님으로 추서됐다. 신도들은 김씨 사망일에 추모예배를 드린다. 통일교 교재 '성약시대 청평역사와 축복가정의 길'은 충모님을 기독교의 마리아에 비유하면서 '앞으로 온인류는 참아버님의 어머니이신 김경계여사를 흠모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가족 우상화시비의 정점에 있는 인물은 1984년 교통사고로 죽은 차남 흥진씨다. 문 총재는 흥진씨가 죽은 직후 박보희씨의 딸 박훈숙씨와 영혼결혼을 시켰다. 앞서 (님추도일)행사에서 문총재는 "예수님도 영계대표자가 아니다."라며 "천총관 흥진군이 영계를 대표해 참부모에게 직접 보고하고 있다"고 했다. 다음은 흥진님이 2005년 9월18일 한가위를 맞아 참부모님에게 보낸 편지(영계메시지)의 일부 내용이다. 편지에 따르면 5대성인과 그 제자들, 그리고 역대왕들이 흥진님을 통해 참부모님께 다음과 같이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는 것이다. "평화의 왕 천지인 참부모님! .. 사실 저희는 2005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지상재림을 준비하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천지인 참부모님께서 중추절을 통해 지상재림을 허락해주시니 감격과 감사의 마음뿐이옵니다. . 천총관 흥진님을 모시고 지시를 받으면서 천지인 참부모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 세계만국과 만백성이 참부모님을 왕의 자리에 모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천주청평수련원홈페이지 '흥진님메시지') 1980년대 후반에 있었던 에지프트 사건은 통일교신도들에게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에지프트는 짐바브웨의 흑인 청년인데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몸에 흥진님이 재림했다며 통일교 신도들 앞에 나타났다. '블랙흥진'은 참부모의 허락을 받아 한국을 비롯해 일본,유럽등지를 돌며 통일교신자들에게 고백식을 강요했다.누구든 예외없이 그 앞에 불려나와 자신의 죄를 고백해야했다. 신도들은 간통, 성추행, 공금횡령, 부부싸움, 문총재 욕한 것 따위의 죄를 털어놓았고 에지프트로부터 탕감봉을 맞았다. 죄질에 따라 맞는 횟수가달랐다. 문총재 장남 문ㅇㅇ(44)씨의 장인인 홍성표 당시 일화사장과 통일교의 2인자로 불리던 박보희 당시 한국문화재단 이사장도 에지프트의 몽둥이를 피하지 못했다. 홍성표씨의 딸인 홍난숙씨는 박보희씨 구타사건에 대해 이렇게 썼다. "그(에지프트)가 박보희씨를 너무도 세게 때려 박씨는 일주일간 조지타운병원에 입원하지 않으면 안됐다. 박씨는 의사들에게 계단에서 굴렀다고 말했다. 후에 머리의 혈관을 수술하기 위해 외과수술이 필요했다." 세계적인 미디어그룹인 타임워너 한국지사장을 지낸 박씨의 아들은 "부친에 대한 폭행이 통일교 내부 파워게임의 산물이라는 시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오래된 사건이고 저로선 언급하기 뭣하다"며 "그간 통일교 내부에서 많은 사건이 있었다. 그에 관한 자료와 책을 참고하라."고했다. "베들레헴 예수 드림" 이영선씨는 남편 박준철 목사가 죽은 후 그 뒤를 이어 통일교대책협의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이씨 부부가 에지프트 앞에 선 것은 1988년 12월 18일 이었다. 장소는 서울 청파동에 있는 통일교 본부교회. 1975년 합동결혼식을 한 1800 가정이 다 모였다. 모든 가정이 죄를 고백하고 탕감봉을 맞았다. 맞지 않은 목사는 박목사와 또다른 목사뿐이었다.두 사람은 '의인'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이씨는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일이지만, 당시 신도들은 에지프트가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거짓말하면 죽는줄 알았다."고 회고했다. 광풍과도 같은 고백식이 끝난후 에지프트는 통일교를 떠나갔다. 홍난숙씨에 따르면 폭력사태의 후유증을 걱정한 문총재가 내보냈다는 것. 신도들 사이에선 에지프트가 죄와 상관없이 주관적으로 몽둥이질을 한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었다. 통일교 지도부는 에지프트가 떠난데 대해 "흥진님의 영이 에지프트의 신체를 떠나 영계로 돌아갔다."고 공표했다. 홍난숙씨에 따르면, 에지프트는 아프리카로 돌아가 '가루트'라는 새종파를 만들어 메시아행세를 하고 있다고한다. 통일교에서는 유난히 영적세계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다.2000년에 출간된 '영계의 실상과 지상생활'은 이 분야의 고전으로 신도들의 필독서다. 이 책은 1997년에 사망한 이성헌씨가 영계에서 보내온 메시지를 김영순씨가 정리한 것이다. 이씨는 1990년대에 세계일보 주필, 사장 및 부회장을 지냈다. 이 책에 소개된 흥진님 메시지 중 일부다. "아버님, 저 문흥진입니다. .. 효진 형님, 예진누님! 우리는 아버니모가어머님을 모시고, 정말 천지에 둘도 없는 메시아를 모시고 살아가는 가족이 아닙니까. 우리는 지금 고난의 자리에 있지만 영원한 세계의 영원한 皇族입니다..." 예수 소크라테스 마호메트 공자 석가 5대성인이 영계에서 참부모님에게 보냈다는 편지와 영계 보고서도 눈길을 끈다. 문 총재는 1998년6월13일 미국 뉴욕 메디스스퀘어가든에서 거행된 1억2000만쌍 축복식을 통해 이들 모두에게 지상인인 한국여성 한명씩을 짝 지워줬다. 이들은 편지에서 그 사실을 언급하며 참부모에게 감사를 나타냈다. "참부모님, 저는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태어난 초라한 예수입니다. .. 예수는 지상에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살아왔사오나, 이제 이곳에서 하나님 앞에 참부모님 앞에 후회없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 지상에서 저의 아내로 맺어주신 장 여사께서...베들레헴 예수 드림. 1999년12월29일." 석가는 1999년 12월30일 불교계 영계권을 대표해 올린 보고서에서 참부모님에게 "다시 지상인으로 태어날 수만 있다면 저의 발바닥이 닳도록 땅끝까지 걸어다니며 통일원리를 전파하겠다"고 다짐했다. 김일성은 2000년1월3일 공산구너을 대표한 영계보고서에서 자신을 "지상의 북한 땅에서 며칠 동안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던김일성" 이라고 소개한 뒤 "김정일을 만나 원리교육을 시켜달라"고 애원했다. 이성헌씨는 5대 성인 외에도 인류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을 영계에서 만난 얘기를 전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유관순은 요즘 '가는 곳마다 참부모님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영웡이라고 외치고 있다." 또 박정희는 "문선명선생님께서 이 나라 오실 때 모든 것에 대해 사죄를 드리겠다"는 인사말을 전했다. 통일교 교리에 따르면 참부모의 사명은 타락한 인간을 원죄없는 자녀로 다시 낳아 천국에 들어가게 해주는 것이다. 문총재가 공식적으로 낳은 자식은 모두 15명. 첫부인최선실씨 사이에서 낳은 1명을 빼고는 전부 참어머니 한학자씨 사이에서 낳은 자식이다. 문 총재는 1957년 최시와 이혼했지만 그 자식은 호적에 올렸다. 음주운전,마약,구탁 그런데 참어머니가 낳은 14명중 3명이 죽었다.차녀 혜진씨는 낳은지 두달이 못돼 죽었고, 차남흥진씨는 1984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6남 영진씨는 1999년 10월 미국의 한 호텔에서 추락사했다. '자살'이라는 언론보도 (1999년11월11일 연합뉴스, AP통신 인용보도)가 있었으나, 통일교측은 이를 부인한다. 문총재 자식을 둘러싼 논란의 한가운데 서있는 사람이 장남 문ㅇㅇ씨다. 그는 19세때 네 살 아래인 홍난숙씨와 결혼했다. "그 분은 그냥 제 아버지일뿐" 홍씨의 이 얘기를 받아 어떤 여자가 방송에 등장해 "많이 듣던 소리군요" 하고 장단을 맞춘다. 놀박게도 문 총재의 넷째 딸인은진씨다. 은진씨는 문총재부부가 자신에게도 같은 말을 했다며 자신은 통일교를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분은 그냥 제 아버지일 뿐이에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되겠죠." 은진씨는 홍난숙씨에 대해 "매우전직하고 내가 존경하는사람" 이라고 친근감을 드러냈다. 홍씨는 또 "문목사는 영어를 못하고 어린 자녀들은 한국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모 자식간에 대화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홍씨는, 앵커가 '문목사일가의 그늘에서' 라는 책을 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전느 하나님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순수한 이상주의에 빠져있었는데, 저같은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들이 통일교의 희생양이 되기 쉽죠. 저도 그중 한사람 이었고요." 홍씨가 "문목사는 결코 메시아가 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하자 앵커가 묻는다. "그렇다면 가짜 메시아란 말인가요?" "사기꾼이죠. 문목사 일가의 15년간 생활하면서 얻은 결론이에요." 제 3부, 탈교자들의 증언 "하나님은이미 이 땅위에 인생과 우주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게 하기 위해 한 분을 보내셨는데, 그 분이 바로 문선명 선생이시다." (원리강론 총서) - 사례1 하나님 - 한 장의 ㅈ너단지가 A씨(40대) 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다. 1999년 미용실에서 만난 50대 여성이 건넨 그 전단지에는 결혼에 관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순결한 결혼' '이상적배우자를 소개합니다' 따위의 문구와 참가정실천운동본부라는 사회봉사 단체 이름이 적혀있었다. 당시 사업에 실패해 30대 중반이 되도록 결혼을 못한 A씨는 전단지에 적힌 전화번호로 '상담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담자의 안내로 역 근처의 한 건물로 갔다. 참가정실천천운동본부라는 간판이 보였다. 참부모 사진 앞에 하루 100번 절해 얼마 지난 그는 참가정실천운동본부가 통일교회의 다른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게됐다. "통일교라는 걸 알고 발을 빼려다, 결혼하고 싶은 마음에 몇 번 나가면서 조금씩 세뇌돼갔어요. 발못부터 서서히 물에 잠긴거죠." 몇차례 교육을 받은 후 그는 세 살 어린 일본여자를 사진으로 소개받았다. 참부모님ㅣ 계시를 받아 맺어준 짝이라고 했다. 2000년 2월12일 처음 대면했는데, 목사의 지시에 따라 다음날 곧바로 결혼했다.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4억쌍 1차 합동결혼식 이었다. 원래는 축복비로 200만원을 내야했는데 돈이 없어 100만원만 냈다. 꽃과 장갑만 지급됐고 예복은 스스로 준비해야했다. A 씨와 같은 교구에 소속된 합동결혼식 대상자들은 전날지방의 모 회관으로 집결해 짝을 맞춰보고 사전 교육을 받았다. 그곳에서 숙박한 후 당일 전세버스로 식장으로 향했다. 식장에서 그들은 남녀 구분해 두 줄로 섰다. 문 총재가 입장하면서 양쪽으로 늘어선 신랑신부들에세 성수를 뿌렸다. 황선조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회장이 사회를 봤다. 결혼선서문과 결혼서약서 낭독, 문 총재의 성혼선포, 만세삼창 순으로 이어졌다. 식이 끝나고 버스를타고 집결지로 되돌아갔다. 거기서 탕감봉 의식을 치렀다. 원죄오 지은 죄, 연대죄를 탕감한다는 뜻에서 세대씩 주고받았다. 약하게 때릴 경우 다시 해야했기에 다들 힘껏 쳤다. A씨는 창피한 마음에 순간적으로 집으로 돌아갈 생각도했으나 '신부가 예뻐'참았다. 식은 치뤘지만 함께 살 수 없었다. 결혼후 3년간 떨어져 각자 전도 생활을 마친 다음에야 가정을 꾸릴 수 있다는 규정 때문이었다. A씨는 그사실을 식을 올릴 무렵에야 알았다. A씨의배우자 B씨는 7년차 신도로 신앙이 좋은 편이었다. 결혼식을 치른 후 일본으로 돌아갔다가 1년만에 한국을 방문했는데, 선물을 사러가서는 참부모에게 바칠 것을 가장 먼저 챙겼다. 그 다음이 시부모, 남편 순이었다. B씨는A씨가 다니는 교회에서 또 다른 일본인, 필리핀인 주부와 함께 숙박하며 몇 달간 전도생활을 한후 일본으로 되돌아갔다. A씨는 부인이 한국에 와있는 동안엔 생활비로 교회에 월30만씩 냈다. A씨는B씨와의 빠른 결합을 꿈꾸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집에 걸린 참부모사진(교회달력)앞에 하루에 50-100번씩 큰절을 했다. 집을 나설 때는"아버님다녀오겠습니다," 귀가해서는 "아버님다녀왔습니다"하고 인사했다. 원리강론도 10번가량 잃었다.'영계의 실상과 지상생활'의 경우 처음엔 기가 막혀 믿지 않았지만 자꾸 잃으니 '은혜'가 되는 듯 싶었다. "5년 동안 먼지만 실컷 먹었다" 그가 청평 수련원에서 열리는 조상해원식에 처음 참석한 것은 2001년 후반이다. 일본에서 건너온 B씨가 "참석하지 않으면 가정출발을하지 않겠다" 고 종용했기 때문이다. 집회는 천성왕림궁전 대성전에서 열렸다.주말 저녁 7시에 시작됐는데, 대성전이 가득 찰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조싱해원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해원헌금을 내야했다. "문선명은 내 아들이요" A씨는 "참부모가 30-40대 피를 갖고 있기 때문에 150세까지 산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지난해 행사 때 보니 건강이 좋지 않아보였다"고했다. "1월13일 왕권즉위식 기념일이었어요. 단상에서 말씀집을 읽는데, 발음이 분명치 않고 말투가 느릿느릿해 뭔 말인지 못 알아듣겠더라고요. 옆에 있는 목사들이 '영계를 왔다갔다하기 때문에 저렇다'고 속닥거렸어요. 힘든 기색이 역력하자 중간에 곽정환 회장이 나서서 대신 읽었어요." A씨의 신앙심이 흔들린 데는 문총재 '우상화'가 한몫했다. "정확한 연도는 기억나지 않지만 청평에서 열린 '왕권즉위식' 기념일에 일어난 일이에요. 매년 이날엔 왕관을 쓴 참부모가 자식들과 함께 황족 도포차림으로 등장해요. 참부모가 병풍 뒤에서 나온 직후였어요. 사회자가 '모두 조용히 하십시오. 하나님 오셨습니다' 하더라고요. 5분쯤 지나자 병풍 뒤에서 나오는 굵직한 목소리가 대형스피커를 통해 장내에 울려퍼졌어요."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문선명은 내 아들이요, 참 부모요, 구세주이니라." 아주 엄숙한 분위기였는데, 속으로 '이건 아니다' 싶었죠. 무슨 하나님이 마이크를 잡고 말합니까." 2005년 7월 그는 통일교에서 빠져나왔다. 크게 두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신앙에 대한 회의였다. A씨는 인터넷을 통해 문총재 장남과 이혼한 홍난숙씨의 수기를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어떻게 참부모 자식한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통일교회에서 30년간 목회생활을 하다 탈퇴한 박준철 목사의 책을 읽으면서는 '내가 속고 살았구나'하고 탄식을 거듭했다. 그 못지 않게 중요한 이유는 일본인 부인B씨의 경직된 태도였다. B씨는 A씨의 믿음이 약하다는 이유로 가정출발을 기약없이 늦췄다. "결혼한지 5년이 지나도록 잠자리 한번 같이 못했어요. 은혜도 안오고 결혼도 안되고.. 주변에서 결혼식만 하고 헤어진 부부가 많다는 얘기를 듣고 난 후로는 점점 자신이 없어지더라고요. 목사도 (B씨를) 열심히 설득했는데 역부족이었어요. 결국 제가 '너무 지쳤으니 헤어지자'는 편지를 보냈어요." 혼인신고를 한 터라 소송하지 않고 이혼하려면 여자측이 동의해야했다. A씨가 이혼을 요구하자 목사가 포기각서를 요구했다. 이혼에 대해 어떠한 이의제기도 하지 않고 소송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고한다. A씨는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각서를 써줬다. 그 직후 협의이혼이 이뤄졌고 그는 통일교에 발길을 끊었다. "참가정을 지키기 위해 5년간 바람 한번 안피우고 기다렸습니다. 손해배상청구를 한다면 한 5억원은 가능할 겁니다. 그동안 갖다 바친 헌금이 각종 경비를 포함하면 2000만원이 넘어요." A씨는 "나같은 피해자가 더 안 생기길 바라는 마음에서 인터뷰에 응했다"고 밝혔다. "저는 5년간 직접 겪었기에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거짓말했다면 벌 받을 겁니다. 교리는 좋은데 수뇌부가 그걸 악용해 신도들을 착취하는게 문제입니다. 언론도 겉만 보지 말고 속을 잘 샆리고 기사를 쓰면 좋겠습니다." - 사례 2 유 관순 - "예배시간에 교구장 목사가 하는 말이, 유관순이 태극기 흔들며 만세부른게 문선명총재 탄신을 축하하는 것이었다는 거예요. 어이가 없었죠. 끝난 후 우리끼리 모여 배꼽 잡고 웃었어요. 우리가 역사를 잘못 배웠나보다 하면서." "열심히 안 나오면 가정출발 늦어진다" 2002년 2월16일 20대 후반의 C씨는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4억쌍 3차 합동결혼식의 주인공 중 한명이었다. 상대는 교구장이 특별히 신경써서 골라준 미모의 일본여성 D씨. 그보다 네 살 아래였다. 합동결혼식 참가자는 대부분 상대방 사진만 본 상태에서 결혼한다. 하지만 교회에서 모범청년으로 인정받은 C씨는 교구장의 배려로 식을 치르기 몇 달 전 일본에 건너가 D씨와 그 부모를 만났다.D씨의 부모는 6000가정(1982년합동결혼식)출신으로 독실한 신자였다. C씨는 결혼비용으로 200만원을 교회에 냈다. 결혼식 전라 서울 근교 팬션에 합동결혼식 참가자가 다 모여 짝을 맞추고 준비상태를 점검받았다. 결혼식 하객은 가족당 4명으로 제한됐다. 당일 아침 C씨는 부모와 함께 식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식장 입구에 서 있던 통일교관계자가 C씨의 부모에게 신랑신부와 같은 복장을 할 것을 권유했다. "사람이 많아 입장 인원이 제한되고 있으니 그 옷을 입어야 입장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주변에 놓인 여려개의 상자에 웨딩드레스가 쌓여있었다. C씨의 어머니는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아버지는 입고 온 양복 윗주머니에 꽃을 꽂았다. C씨가 식장에 들어가보니 자신의 부모처럼 나이 든 '신랑신부'가 많았다. 하객으로 온 신랑신부의 부모들에게 전부 같은 수법으로 예복을 입혔던 것. C씨에 따르면 합동결혼식 참석자 수에 보모들도 포함됐다고 한다. 결혼식은 3일에 걸쳐 진행됐다. 첫날은 식을 올렸고, 둘 때날은 경기도 구리수택동에 있는 중앙수련원으로 가서 결혼교육과 더불어 탕감봉 의식을 치렸다. 마지막날엔 올림픽공원의 한 경기장에서 축하공연이 있었다. 문총재의 3남인 현진씨가 행사를 주관했다. 현진씨는 노래와 함께 춤을 췄고 영어로 강연도 했다. 당시 C씨의 교회가 소속된 교구에서 탄생한 합동결혼식 축복가정은 모두 20쌍. C씨는 특별한 경우였고 대부분 30대 중반을 넘긴 노총각이었다.신부는 거의 다 일본인 이었다. 그런데 결혼한 그 해 절반이 넘는 쌍이 깨졌다. 신발로 맞으면서도 환호 장모는 참부모가 나타나는 생사에는 꼭 참석하는 열성 신도였다. 딸 D씨도 만만찮았다. 한국에 왔을 때 C씨가 혼인신고를 하자고 제의하자 '하와이 수련회에 참석해 참부모를 만나야한다'며 거절하고는 하와이로 떠나 버렸다. D씨는 하와이에서 6개월간 봉사생활을 했다. C씨는 여자측 집안의 강권에 못이겨 청평수련원에 세 번갔다. 한번은 문총재가 집회 현장에 나타났다. 장모와 부인, 처제가 함께 참석한 자리였다. "난리도 아니었어요. 특히 일본여성들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면 환호했어요. 한 시간 이상 설교를 했는데 대부분 무슨소린지 알아듣기 힘들었어요. 욕밖에 기억나는게 없습니다. '이 ㅆ년들아' 하고 대놓고 욕을 했어요. 앞자리에 앉은 신도들은 신발로 맞기도했죠. 그래도 좋다고 환호성을 질러댔어요. 문선명 총재의 몸짓 하나하나에 열광했습니다. 그 와중에 처제가 졸자 장모가 뒤통수를 세게 때렸어요." 2002년 7월 C씨는 통일교에서 탈퇴한 박준철 목사를 만난후 자신의 회의가 옳은 것이었음을 확인했다. 일본의D씨에게 박목사 관련자료를 보내줬다. 그걸로 두사람 관계는 끝났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에 협의고뭐고 할 필요도 없었다. "남자들은 대체로 신앙보다는 결혼이 목적이기 때문에 교회에 열심히 나가지 않아요. 경제 형편이 좋지 않고 홀어머니를 모시는등 가정환경이 좋지 않은 사람이 많죠. 한국 남자는 절박해서 결혼하는데, 일본 여성은 합동결혼식을 참부모님의 행사 중 하나로 생각해요. 깨지며ㅓㄴ 다시 할 수 있는걸로. 저도 나중에야 제 짝이 저와 맺어지기 전에 일본 남자와 축복결혼한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ㅛ. 제 주변에도 몇 번씩 합동결혼식을 하는 여자가 많았어요." 사례3 결혼소개소장 F씨는(30대중반)는 세계일보를 배달하던 일본 주부의 권유로 통일교회에 나가게됐다. 서울강남교구 수련원에서 주말마다 교육을 받았는데, 처음엔 통일교와 관련된 곳인 줄도 몰랐다. 그저 강연이 졿아 빠져들었을뿐이다. 정해진 교육이 끝날 즈음 "한국에 메시아가 이미 출연했다"는 강사의 얘기를 듣고서야 비로소 통일교라는걸 알았다. "JMS 일부목사, 통일교로 옮겨갔다" 그는 군에 입대하기 전 교구수련원에서 1주일 동안 교육을 받고 구리 중앙수련원의 21일 수련회에도 참석했다. "메시아 위해 내 청춘 바치겠다"고 친구도 전도했다. 전역 후 잠시 식당을 운영했는데, 교구장이 사진으로 일본 여자를 소개해줬다. 몇 개월 후인 1999년2월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3억6000만쌍 합동결혼식에 참가했다. 결혼헌금으로 300만원을 냈는데 일본여자는 300만엔을 냈다. "식장에 친구는 안명도 안왔어요. 다들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어요.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 없는 짓을 한거죠." F씨와 결혼한 일본여자는 신앙이 깊지 않았다. 독실한 신자인 어머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합동결혼식에 참가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식이 끝난후 곧바로 일본으로 돌아가 다니던 직장에 계속 다녔다. 전문대를 나온 F씨는 교구장의 보증으로 6개월간 순전단 교육을 받았다. 교육을 마치자 목회할 수 있는 자격이 생겼다. 나중에 신학대학에 진학한다는 조건이 붙어있었다. 첫 임지는 지방소도시의 농촌교회였다. 거기서 노총각 교인 열댓명을 합동결혼시켰다. 신부는 주로 필리핀여자였는데, 남자와 열살 이상 나치차가 나는 경우가 많았다. F씨는 "결혼소개소장 노릇을 한셈" 이라면 웃었다. "교인들을 심방해보니 대부분 찢어지게 가난하더라구요. 필리핀 부인들에게 '왜 같이 사느냐' 고 물어보면 '한국이 신앙의 종주국이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그에게 "목사는 헌금을 얼마나 하느냐"고 묻자 "통읽 내부를 잘 몰라서 하는 질문"이라면 "교인들에게만 강조하지 목사나 교구장은 잘 안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디. 그는 "통일교는 김일성 김정일 체제와 똑같다"며 문총재 우상화를 비판했다. "예배당에 문선명 총재 사진을 걸어놓고는 시작할 때와끝날 때 늘 경배를 드렸습니다." 교인들은 집에 사진을 모셔놓고는 수시로 절했고요." 어느 날 통일교는 신도들에게 천일국백성을 뜻하는 국민증이라는걸 발급했다. 주민등록증과 모양이 비슷했는데, 주민등록번호와 사진, 주소, 소속교회 이름을 적게 돼 있었다. 말하자면 교인확인증 이었다. 그것을 지니고 있으면 어느 교회에 가더라도 밥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F씨가 시무한 교회에서도 30장 안팎의 국민증이 발행됐다. 2년후 그는 지방대도시 교회로 발령받았다. 다진 기반도 있고 일본에서 부인도 아직 들어오지 않아 농촌교회에서 좀더 근무하겠다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자는 직장생활을 핑계로 입국을 자꾸 늦췄다. 결국 헤어지기로 합의했다. 새 임지에 가보니 교인 사정은 농촌교회보다 나았다. 50명가량 됐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목사인 자신의 신앙이 자꾸 옅어지는 것이었다. - 제 4부 황선조 세계 평화통일가정연합회장 인터뷰 - "인류의 부모되신 예수님이 한국으로 재림하시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분은 틀림없이 한국말을 쓰실 것이므로 한국어는 바로 조국어가 될 것이다. 따라서 모든 민족은 이 조국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리하여 온 인류는 한 나라 말을 사용하는 한민족이 되어 한나라를 이루게 될 것이다." (원리강론 '재림론') "기업이란 평화를 위한 도구" 황회장의 표정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종교와 기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좇는 통일교의 실무책임자. 통일교 내에서 황 회장은, 기업식으로 표현하자면 2세대 가신그룹의 리더로 평가받는다. 여의도에 국제타운 -여의도 (여의도22번지, 1만4천평, 현재 주차장)에 세계선교센터를 만든다는 계획은 어떻게 됐나요. "정주는 문총재님의 생가가 있는 곳이에요. 1991년 문총재께서 김일성 당시 주석을 만났을 때 김주석이 문총재의 생가를 잘 보존하라고 지시한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한창 추진되다가 남북관계의 복잡한 사정으로 현재는 사업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신도의 fund raising도 문제가 됐지요 ? "기자님도 메시아 될 수 있다." -흥진님의 영이 자신에게 재림했다는 짐바브웨청년 사건도 있었죠. 신도들에게 죄를 고백하라며 몽둥이로 팼잖아요. 흥진님의ㅕㅇ왜 느닷없이 그 사람 몸에 들어가 그런 일을 했나요. 재림주 죽은 후에 놀라운 영적 역사 -어쨌든 통일교의 지상천국은 기독교의 천년왕국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네요. 아벨의 유언 황회장은 "재림주가 왔다고해서 지상 세계가 끝나는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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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회장은 이날 곽정환 (郭錠煥) 세계일보 부회장.이상회 (李相回) 사장